머리가 나빠 곧잘 잊어버리는 필자로서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일들 중에 하나가 교회 연보함에 있던 5원짜리 동전이다. 목사님 막내아들이 친구여서 평일에도 자주 놀러갔는데, 어느 날 오후, 친구가 집에 없어 예배당에 들어갔다가 무심코 연보함 뚜껑을 열어보니 백동전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망설이다가 주위를 확인하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꺼내어 부리나케 교회를 빠져나와 쿵쿵거리는 마음으로 향한 곳이 인근에 있던 국수집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소피국수’ 한 그릇을 사먹고 나서야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하나님의 것을 훔쳤는데 어떡하지?’ ‘아니야 배고픈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야.’ 성경에 나오는 아담도 선악과를 따먹고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 남은 3원으로 동시상영을 하던 삼류극장에 갔는데 영화 제목은 물론 내용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것을 훔쳤다는 생각을 떨친 적이 없고 그로인해 남을 비판하는 것에 주저한다.
학부모가 되고 난 뒤 아이들을 키울 때도 그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 가능하면 아이들의 주머니에 동전 몇 개는 있게 하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할 때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먹거리에 필요한 정도였지만 그 이후에는 좀 더 많은 용돈이 필요한 것을 이해했다. 더구나 친구들을 사귀고 어울리기 위해서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리라.
전에도 언급했던 둘째가 특히 통이 크고 친구사귀기를 좋아했는데, 중3 때 벌써 당구를 200이나 쳤다. 그래서 용돈이 궁하면 거실에 있던 피아노 위에 빈 지갑을 슬며시 올려놓는 것이 우리끼리의 싸인 이었다. 마지막으로 둘째에게 용돈을 준 것은 군에서 제대하기 일주일 전쯤인 어린이날이었다. ‘넌 다 컸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여전히 어린애야’라는 기분으로 적지 않은 용돈을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와서 그 돈으로 내무반 회식을 했다는 통 큰 보고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바라보며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제대로 쓸 줄 아는 아이로 키웠다는 안도감에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만지는 금융기관에서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직원들의 주머니가 비지 않도록 한 달에 몇 번씩 여러 가지 명목으로 돈을 나누어 지급했는데, 자녀들에게 주는 용돈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도 좋을 것이다.
필자는 지갑에 만 몇 천원이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평온하다. 새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 계획했던 일들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최근에 이 평온을 깨뜨리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 외출하려고 탁자 위에 두었던 지갑을 집을 때 그 속에 들어있는 난데없는 용돈(?)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