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매 맞는 교사’라는 제목의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매 맞는 부모’라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동물의 역습’이란 다큐맨터리도 아니고 갈 때까지 간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자식이 아니라 다행이다”란 생각 이전에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인해 학교에서 간접체벌도 할 수 없는 사정 때문에 그 폐해를 우리 자녀들이 입게 되고 결국에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 될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정에서의 자녀들에 대한 체벌은 어느 정도 용인되고 있는데, 잘못한 자녀들을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좋을까요?
필자는 체벌에 대한 뼈아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상급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한참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막걸리 한주전자를 사오라고 하시는데 그것도 외상으로 하라고 하시니 주변머리 없는 제가 가려고 하지 않아 화가 나신 당신께서 혁대로 때렸는데 그것이 공교롭게 눈 쪽으로 휘감겨 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때 마침 어머니께서 오셔서 말리는 바람에 더 이상의 매는 맞지 않았지만 그 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내 아이들을 때리지 말아야지.” 그 후에 원하던 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멍해 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게도 첫아들이 생기고 그 애가 두 살 때 쯤, 사우디에서 근무하다 돌아온 한 지인의 집에 저녁초대를 받아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려는데 아들 녀석이 장난감 하나를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칭얼대기 시작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한참을 달래다가 나도 모르게 애의 뺨을 한 대 때렸습니다. 놀라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아내의 등에 업혀 집으로 오면서 얼마나 후회 했는지 모릅니다. 녀석이 미워서가 아니라 ‘못난 애비’의 자격지심으로 아이를 때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렸을 때 나를 때렸던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하시던 사업실패로 집에 계시면서 독서와 화투 패 떼는 것으로 소일 하셨던 아버지께서 느꼈을 ‘자격지심’을 생각하고는 이미 고인이 되신 아버지가 갑자기 그리워지면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버지, 그 때 제가 잘못했습니다. 지금 많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다 큰 후 어느 저녁식사 때 아내가 눈치도 없이 그 때 그 일을 큰 애에게 모두 얘기하는 바람에 잊혀가던 상처가 도졌지만 덤덤한 표정으로 녀석의 눈치를 살피니 다행히 자기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해서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고, 그 위기를 넘기려고 아내가 둘째에게 잘못한 것들을 죄다 폭로하여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해외에서 공부하며 16개월 된 손녀의 아빠가 된 큰 애가 딸을 키우면서 느낀 생각을 신데렐라와 관련된 노래 이야기를 하면서 “언젠가 훌쩍 자기 곁을 떠나겠지만, 얼마나 우리들이 얘를 사랑하는지 얘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큰 애를 다시 보게 되면 그 때 그 일을 사과하려고 합니다. ‘자격지심’ 때문에 이쁜 손녀를 때리는 것을 막으려는 할애비의 예쁜(?) 마음만이 아니라 애비가 받을 상처와 후회를 막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