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면서 참으로 괜찮은 아이들과 존경스러운 어머니들을 많이 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이들이 아깝다고 여겨지는 부모들도 간혹 뵐 수 있었습니다. 방문교사로서 사교육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오히려 가정방문을 통해 공교육에서는 접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을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어서 그 동안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자녀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요즘 세간에서 자녀들의 성별을 가지고 우스개로 금메달, 은메달, 목매달 등으로 표현하는 것을 가끔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자녀란 메달일까요? 노후에 기댈 보험일까요? 아니면 웬수(?)일까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 할 때 만물 중에 유일하게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존귀하고 보배롭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런 분께서 우리를 닮은 자녀를 우리에게 주신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들의 못 다한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함일까요? 아니면 우리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대상으로 주셨을까요?
“진정한 미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미(美)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경향이 강합니다. 달리 말하면 소유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욕심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자녀를 통해 채워 대리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고, 그로인해 자녀교육을 망치기도 합니다.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자녀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자녀란 ‘현재의 나를 닮은 또 다른 어린 나’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무의미 하듯이, 우리 자신의 존재가치는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란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의 어떤 것 심지어는 부모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이런 보배로운 자녀들이 커가며 세 살 때까지 부모에게 주는 기쁨이 과연 전부 일까요? 우리가 가르치고 기르는 방법에 따라 그 기쁨과 보람은 영원한 것 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가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이렇게 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들께선 어렵고 힘든 사정 때문에 안타까워 하시면서도 해주지 못하셨지만, 기억의 실타래 속에서 그런 소망들을 찾아내어 그것이 자녀에게 해롭지만 않다면, 또 다른 어린 나에게 그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자녀교육의 핵심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