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장대 같은 소낙비다. 어린 시절에는 사랑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면서 낭만에 젖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걷던 시골길이 좋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 비 속에서 다음 수업을 위해 움직일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깔끔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데, 아~ 하늘이시여...
8년이란 세월동안 방문바둑 교사로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들을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지금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옛 기억을 더듬어 본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세월을 회고하는 것이지만,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
희망(?)퇴직을 하고 나서 대략 1년쯤은 쉬었다. 그동안 망가진 몸을 추스린다는 핑계로 자전거도 타고 바둑도 두면서 가고 싶었던 나라도 몇 군데 다녀왔다. 인생의 후반기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그동안 몸담았던 직종과 식당을 제외한 것 가운데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것과 가치 있는 일들을 추려가는 와중에 바둑TV에 나오는 광고를 보고 어린이 바둑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일정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프랜차이즈사업이었기 때문에 지역선정과 함께 넓은 영업권을 확보하는 것이 일차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본사지분이 필요해서 그것에도 투자했다. 그리고 비록 자영업이었지만 나름대로의 회사비전을 세웠는데 ‘인재양성’과 ‘사회봉사’였다.
본사에서의 관련 교육을 마치고 대기자 자료를 받아 상담을 다닐 때에 그동안 기다려주심에 감사하는 의미로 꽃다발을 갖다드렸는데, 그것을 받아드는 학부모님들의 표정이 퍽 다양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제일 큰 애로사항이 ‘교사모집’이었는데 방문교육의 핵심은 ‘교재’와 ‘교사’이기 때문에 아무나 뽑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교사엄선’은 제일 중요한 경영방침인 것이다. 때마침 해당지역에 채용박람회가 열려 그곳을 통해 몇 분의 선생님을 모실 수가 있었다. 선생님들의 노력과 본사의 홍보활동을 통하여 착실하게 실적을 쌓아갈 때 문제가 터졌다. 사업이 막 궤도에 오르려고 하는데 경영권분쟁이 일어났고 임시주총에서 몇 십주 차이로 회사대표가 바뀌면서 그 여파로 지사들이 흔들렸다. 후임대표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한번 흔들린 조직은 결국 2년 5개월 만에 와해되었고, 이후 남아있던 지사들끼리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구심점이 없고 서로의 생각과 계산이 달라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가게 되었다.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지만 남는 것도 있었다. 바로 ‘사람’이다. 어려움을 겪는 동안 서로 격려하고 의지했던 선생님들과 동업자들이 힘을 합하면 되겠다는 판단을 토대로 같은 비전을 지닌 현재 실무대표와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약지 못하고, 고지식해 보이지만 정직하며, 상식을 존중하면서도 손해 볼 줄 아는, 필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최상의 파트너를 만난 것이다.
바둑은 ‘실수의 게임’이자 ‘역전의 게임’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실수와 실패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어, 사람을 살리고 인재를 키우는 회사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