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바둑nTV’에 연재된 이홍렬 바둑전문기자의 ‘나와 골프와 이창호’라는 칼럼을 읽은 후, 편 가르기는 정치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필자가 알고 있는 바둑과 골프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필자가 처음 바둑돌을 잡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한 후 취직준비를 하고 있던 동네 아저씨가 무료했던지 다짜고짜 바둑판 앞에 앉게 하더니 25점을 깔게 하고는 바둑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여 아저씨의 열강에 빠져들었지만 제대로 된 교재 없이 실기로만 배우다보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바둑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우연히 학교도서관에서 바둑관련 책들을 발견하고는 마치 무공비급을 보듯이 탐독하게 되었지만 바둑을 둘 형편이 되지 못해 그 열정마저도 시들해지고 말았는데 대학생이 되어 하숙생활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바둑과 관련된 필자의 에피소드는 대학4학년 2학기 때 일어났습니다. 점심식사 후 오후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 같은 과 친구들과 학생회관에서 바둑을 많이 두었는데, 어느 날부터 ‘원자 역학’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강의시간이 되었는데도 계속해서 바둑들을 두고 있기에 필자도 따라 했었지요. 그러다가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답답해서 강의실을 찾아가 보니 친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자기들은 그 강의의 수강을 취소했었다나요. 164학점을 따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앞이 캄캄했습니다. 전공필수는 아니었지만 3학점짜리였기 때문에 혹시 학점이 모자라면 졸업을 할 수 없고 따라서 ROTC 임관도 물 건너간다는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학점들을 계산해보니 다행히도 1학점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난생 처음으로 파란 F를 받아 전체 학점은 조금 내려갔지만 무사히 졸업과 임관은 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절대로 옳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쓴웃음이 나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꼭 20년 전에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게 되었을 때 처음 몇 주 동안에는 토요일에 신나게 잠만 잤습니다. 금요일 저녁은 갖가지 명목의 모임과 회식으로 일주일 동안의 스트레스를 풀고 토요일 오전은 완전한 휴식(?)으로 망가진 심신을 달래는데 바친 셈이었지요. 몇 달이 지나면서 동료들 사이에 골프 열풍이 불었습니다. 골프를 치지 못하면 어떤 대화에도 끼지 못하는 형편이 되다보니 필자 또한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 어렵사리 골프채를 구입하고 개인교습을 받게 되었습니다. 3개월 동안의 기본 레슨을 받은 후 처음으로 필드에 나갔을 때 비록 공은 굴리고 다녔지만, 느낀 감정은 한마디로 ‘황홀’ 그 자체였습니다. 파릇파릇한 잔디 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그 동안 배운 스윙이 제대로 구사되어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백구(白球)를 바라볼 때의 만족감은 실적목표를 이룬 것 이상이었습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긴장이 풀려 나른한 상태였지만 행복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바둑과 골프’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심신을 단련하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취미이기 때문에 장단점을 파악하여 그것들을 조정해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